무등산_광주
남도의 지주(支柱) 무등산
전남 광주 , 2007. 3. 12(월) 맑음
원효사 - 꼬막재 - 규봉암 - 장불재 - 입석대- 서석대 - 중머리재 - 증심사 (총 14 Km 6시간)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山)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午後)의 때가 오거든,
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무등을 보며/서 정 주
꼬막재 가는길
예전에 찾았던 무등은 안개 속에서 자태를 보이기를 주저하여 입석대 아래서 장님 코끼리 만지 듯하고 돌아왔었는데,
오늘은 파란 하늘에 봄바람이 정겨운 날씨입니다.
다시 찾은 무등산...
세월이 흐르건 말건 무등산은 광주의 시린 가슴을 보듬으며 늘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고, 자세히 보니 예전보다 좀 더 근사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봄은 진작부터 우리 곁에 다가와 얼굴을 간지럽히지만
꽃샘 추위 뒤로 오는 맵싸한 바람살이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제법 경사도를 올리는 길에서 헉헉대다가,
겉옷 하나를 벗어내고서야 제대로 숨통이 트이네요.
솔바람 드나드는 숲길,
평온하기 그지없고, 가뭇하게 얼굴 내민 손톱만한 새순은 한 줌 햇살이 쏟아지자 연초록 웃음을 터트립니다.
길 섶 시원한 샘터에서 마신 한 바가지 물이 어찌도 그리 시원하던지…
이를 위해 그리도 긴 추운 밤을 기다렸나 봅니다.
꼬막재는 예전 꼬막만한 잔돌들이 질펀하게 깔려있어 붙여진 이름이라지만 돌길의 흔적은 가뭇합니다.
담양과 광주를 경계짓는 고개지만 재라고 부리기엔 뭔가 부족한 작은 고개, 꼬막재를 알리는 표석만 없다면 그저 무심코 지나치게 될 산자락에 불과 할 것을….
꼬막재를 지나서도 한동안 봄빛에 취해 흐믈 흐믈해 진 길을 따라 나서면 느닷없이 광활한 억새밭이 펼쳐집니다.
햇볕이 따스하게 데워 놓은 억새 사이를 파고들어 점심상을 펼칩니다.
아직은 겨울 끝. 한줌 햇살이 귀한 시기라 억새 밭으로 차고 넘치는 볕이 아깝네요..
느긋하게 오수라도 즐기고픈 욕심...
편안하게 이어지는 길 끝으로 돌길을 만나면 곧 규봉암입니다.
무등산 3대 절경 중 하나인 규봉암 바위벼랑 아래 절집에 서면
발 아래로 동복호와 어우러진 화순땅 들판이 봄빛에 찰랑거리고,
그 뒤로 올망졸망 키를 재는 산자락이 겹겹으로 아른거립니다.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도 이지역 산자락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뿐이지요..
규봉암까지만 해도 일사분란하게 열을 맞춰오던 일행들은 이제 삼삼오오 흩어져 나름대로의 길을 걷는 듯하고, 그 자유로운 걸음 뒤로 장불재에 닿습니다.
사방으로 너른 시야를 보여주는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억새 숲 사이로 선 듯한 바람이 붑니다.
장불재는 넓직한 억새평전으로 호남정맥의 맹주격인 무등산을 지난 마루금이 안양산쪽으로 굽돌아 서는 길목이 됩니다.
장불재에 서니 모든 것이 넉넉해 보이네요..
장불재에서 무등산의 상징인 입석대, 서석대까지는 한달음입니다.
입석대,
도대체 이 높은 곳에 저렇듯 정교한 돌기둥으로 신전을 세운 이는 누구일까?
입석대는 고대에서나 있을 법한 마법의 성입니다.
신전의 기둥을 요리조리 기어 올라 입석의 상단에 서서 날개짓 펼쳐봅니다.
이곳에 앉으면 누구나 부처가 되지 않을까?
입석대에서 한 차례 더 올라서면 서석대.
무등산의 옛 이름 중의 하나가 서석산이라 했던가!
저녁노을이 들 때 햇살에 반사되어 수정처럼 빛난다 하여 수정병풍이라고도 한다는데...
욕심같아선 그 노을이 들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고 싶습니다.
서석대를 정점으로 더 이상 오를 수 없습니다.
울타리 안으로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이 있지만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이니 중요한 군사시설물이 있는 금단의 성역입니다.
언제쯤에야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 설 수 있는 저 천지인왕봉 고스락을 밟게 될런지...
차별없는 세상, 무등(無等)의 아쉬움만 서석대에 내려놓고 중봉을 향합니다.
서석대 서쪽 사면을 돌아 내리는 길은 아직 봄을 시샘하는 잔설이 깔려 있어 질척합니다.
중머리재는 무등을 오르는 사람들이 마주보기도 하고 등을 돌리기도 하는 만남과 헤어짐의 길목이라는군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느긋하게 산을 오르는 광주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다 보니, 넉넉한 품을 가진 무등산을 늘상 쳐다보고 마음 내키는 대로 찾을 수 있는 광주시민들이 부럽습니다.
증심사로 내려서,
산 이름이 얘기하는
차별없는 세상,
무등(無等).......
이곳 광주와 너무도 잘 어울릴 듯한 단어에서
나 역시 그런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길…
진정으로 기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