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21구간_화령재_큰재

2010. 4. 27. 07:45백두대간

ㅇ. 일시 : 2010년 4월 26일(월)  흐린후 비

ㅇ. 산행거리 및 시간 : 도상거리 31km 실거리 35Km / 11시간24분여

ㅇ. 주요 산행구간:

  화령재(03:40)  - 윤지미산(04:27) - 무지개산(06:00) - 신의터재(07:09) - 지기재(08:23) - 개머리재(09:12)
  - 윗왕실재(10:26) - 백학산(10:51) - 생태통로 점심(12:30) - 회룡재(14:02) - 큰재(15:03)
 

죽은 땅에서 인고의 세월을 지켜온 새싹들의 힘겨운 발길질을
시베리아의 북풍으로 시들게 만든 올 4월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잔인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처한 현실을 대변하듯이....

 

백두대간에서 가장 낮은 지역인 김천 황악산과 상주 속리산 사이의 구간.
이지역의 고도가 해발 300-400m 정도라고 하니 중화지구(옛 중모현과 화령현에 속하는 지역)라 부른다고 합니다.
이번 구간은 다소 긴 거리이지만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관계로 한 구간으로 진행합니다.

 

 

밤12시 퇴근 후 집에 도착하여 베낭을 꾸려
어둠이 짙게 깔린 화령재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화령재는 삼국시대부터 서로 차지하려는 요충지대였고, 6·25 때도 낙동강 전투에 버금가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화령(火嶺), 곧 '불붙는 고개'라는 별칭도 생겼던 것 같네요. 

 


낙엽송 숲 속으로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른편으로 당진-상주간 고속도로,


오후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때문인지 걸음은 빨라지고
수면부족으로 피로감은 배가됩니다.

 

 

진달래가 피어 있는 심한 오름길을 오르니 윤지미산에 도착합니다.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확실한 것이 없네요

 

 

 

대간길에서 살짝 빗겨있는 무지개산
일출을 볼 욕심으로 배낭을 두고 다녀왔으나 구름이 가렸네요

 

 

 날이 밝아옵니다.
싱그러운 숲의 기운이 몸으로 들어옵니다

 

 

 

 

 

문득 숲을 걷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생각되네요

걷는다는 것은 몸으로 모든 존재를 만나고 느끼는 것이라고 누군가 얘기했습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돌멩이 하나에서부터 풀잎 하나, 야생화 한 송이에 이르기 까지
모든 존재들을 몸으로 느끼고 만나는 것입니다.

걸으면 죽었던 몸의 감각이 되살아나고 깊어짐을 느낍니다.
몸과 마음이 살아나는 것이겠지요.

 

 

 

임진왜란 때 최초의 의병장이었던 김준신이 의병을 모아 큰 공을 세우고 순절한 후 불리게된 신의터재를 통과합니다.

논과 밭사이의 농로를 지나고

 

 

 

 


미류나무 서있는 정겨운 마을길과 과수원길도 지나니 지기재입니다.
지기재는 옛날 이 부근의 뒷동산에 도둑이 많아서 적기재라고 부르다가 세월이 흘러 지기재가 되었다고 하네요,
지기재는 금강과 낙동강을 가르는 분수령입니다.

 

 

 

 

개머리재(290m)는 일명 소정재라고도 하며,
과수원이 많아서 백두대간이란 이름에 영 어울리지 않는 곳입니다.

 

 

 

 

 

임도를 지나 긴 오르막을 오르니 백학산 정상입니다.
일명 장자봉이라고도 하는 백학산은 중화지구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고 합니다.
산을 하얗게 덮을 정도로 백학이 내려와 앉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이제는 이름으로만 남겨져 찾아볼 수 없는 백학이 그리워집니다.

 

 

긴 내리막을 내려 욋왕실재에 내려섭니다.
왕실이란 사방으로 산이 빙 둘러싸여 있어서 마치 임금이 사는 구중궁궐처럼 깊숙한 곳에 있는 마을이라네요...
고개 정상에 동물 이동통로가 있어 점심을 먹고 갑니다.

 

 

 

 

개터재로 가는 길엔 진달래가 만발하여 볼 것 없는 중화지구에서 등산객을 위로해주고,

 

 

 

임도가 지나는 회룡재에 내려섭니다.
회룡재란 마을 뒤 회룡산이 풍수지리로 볼 때 마치 용이 뒤돌아보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네요

 

 은방울꽃 군락지

 

 솜털꽃이랍니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더니 비가 시작됩니다.
빗속에서 깨어나는 생명들의 환희가 들리는 듯 하네요..
 

 

 

 


폐교된 학교를 따라 내려가면 바로 큰재에 닿습니다.
폐교된 학교는 항상 아스라한 그리움이 묻혀있는 곳이지요..

 

 

 

긴 여정을 마칩니다.
혼자 걸으면 힘든 먼 거리지만 함께한 산행이라서 피로가 반감되지않았나 생각도 해봅니다.

 
 내 앞에서도 뒤에서도 걷지 말라.

 내가 따르지 않을 수도, 인도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나와 함께 걸으라, 우리는 하나니.  (인디언 아파치족 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