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25. 17:47ㆍ백두대간
ㅇ. 일시 : 2010년 3월 24일(수) 대체로 맑음
ㅇ. 산행거리 및 시간 : 도상거리 12.8km 실거리 16Km / 8시간30분여
ㅇ. 주요 산행구간:
은티마을(08:20) - 구왕봉(09:50) - 은치재(10:53) - 점심 -
악휘봉(12:46) - 막장봉갈림길(15:05) - 장성봉(15:45) - 버리미기재(16:50)
"오늘 산행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못갈것 같네요...."
총무님께 전화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고 놀라서 일어나니 꿈이었습니다
식은 땀으로 등이 젖어있고,
이틀전부터 몸살증세가 있더니만 몸이 아직까지 개운치가 않습니다.
새벽4시, 갈까말까 갈등하다 잠깐 졸았는데
아내의 도시락 준비소리에 눈이 떨어지고,
아프다는 말도, 못가겠다는 말도 입에서 나오지가 않네요...
구간도 짧은데다가 높낮이도 별로 없으며,
환상적인 비경에다가 날씨도 좋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산은 내게 종합병원 같은 곳이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일어납니다.
백두대간이 내게 일러준다.
잘 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 여겼던 나에게
삶은 자신을 향한 깊은 성찰이라고...
백두대간은 나에게 속삭인다.
인생은 시지프스 신화처럼 이 삶을 견디며 이겨내야 한다고 믿었던 나에게,
평온한 삶을 살기위해 잘 해내기 위한 경쟁을 해 왔지만,
잘 해내기 위함은 정작 내가 지치는 시간이었을 거라고...
백두대간은 천천히 그 길을 네게 보여주려나 보다.
삶은 잘 해서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산 위를 더불어 오르내리며 걷는 시간과 같은 길이라는 것을....[서 인석]
견공들의 우뢰와 같은 환호소리와 함께 은티마을에 내려섭니다.
지난번 지나친 남근석도 보이네요...
지름티재로 가는 곳곳에는 몇 일전 실종된 분을 찾는 전단지와 현수막이 보입니다.
오늘따라 왜이리 가슴이 아린지...
부디 무사하시길 바랍니다....
한시간여 천천히 오른 지름티재에는 목책울타리와 간이천막이 보이고 응달에도 눈이 없네요.
낙엽송 잡목사이를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서 구왕봉으로 나아갑니다.
암벽에 올라 좌측 전망바위에 서니, 희양산의 슬랩이 멋지게 조망됩니다.
암릉을 지나 구왕봉.
옛기록에는 구룡봉으로 나와 있는데 이는 지증대사가 봉암사를 창건하기 위해 그곳에 있는
큰 연못에 사는 용 아홉 마리를 구룡봉으로 쫓아내고 절을 지었다는데서 유래한 이름이랍니다.
그래서 일까요? 희양산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아저씨! 힘내슈~~
나무가 위로해주네요...
암릉을 지나고 오르내리다가 주치봉을 지나 성황당이 있는 은치재에 도착,
은티마을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언젠가 읽은 적이 있는 구절을 되새기면서 악휘봉으로 힘든 오름길을 시작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서서히 고도를 높히며 진행하다 식사하기 좋은 공터에서 식사를 합니다.
산행이 여유가 있어서인지 모두들 여유롭네요...
특히 형식선배님이 찬조하신 명품 막걸리가 진가를 발휘합니다.
악휘봉은 대간능선에서 약10분 정도 떨어져 있지만,
빼어난 풍광으로 빠뜨릴 수 없는 곳이라 배낭을 벗어두고 다녀옵니다..
촛대바위와 적당히 굽은 노송이 신비감을 더합니다.
악휘봉 정상에 오르니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지친 몸을 달래주네요.
음기 가득한 희양산을 중심으로
간택되기 위한 사내들의 고개가 빳빳한 산군들이 그림처럼 감싸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와,
낙엽 쌓여 걷기좋은 길을 터덜터덜 걸어갑니다.
막장봉 갈림길에 도착하고,
발빠른 회원들은 벌써 베낭을 내려두고 능선에 올라 붙었습니다.
따뜻한 양지쪽에 앉아보니 막장봉으로 오르는 회원들이 다 보이네요..
월악산권을 지나고,
이제 속리산권에 들어왔습니다.
개구리 왕눈이 바위가 반겨주네요..
백두대간의 허리를 떠받치고 있는 장성봉에 오릅니다.
ㅉㅉ ..
백두대간이라는 지리 인식이 정립되지 않았더라면 사람 사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숨어있던 산이었다죠?
장성봉을 명산이라고 하는 이유는 많은 산을 거느리고 있는 깊은 산이기 때문이랍니다.
장성봉을 중심으로 북쪽 악희봉에서 시계방향으로
구왕봉(898m), 희양산(998m), 애기암봉(731m), 둔덕산(970m), 대야산(930.7m), 군자산(910m) 등이
원을 그린 듯 에워싸 깊은 산의 풍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버리미기재로의 하산은 시그널이 매달려있는 [탐방로아님] 방향으로 갑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 고 했는데,
이 절대의 진리를 깨는 사람들을 이해해야 되는지..
조용히 안온듯 지나가렵니다..
내리막길이 생각했던 것보다 길게 계속되네요,
다행인 것은 얼어있는 곳이 거의 없어 힘이 들지 않습니다.
저 바위 주위로 멋진 바위들이 많았는데 만사 귀찮아서 지나칩니다.....
철망울타리가 보이고 버스가 보입니다.
버리미기재,
'버리미기'란 이름은 '보리먹이'가 전이되었다는 설이 있고,
'벌어 먹이다'의 경상도 사투리란 설도 있다네요...
손바닥만한 밭뙈기에 목숨 의지하던 궁벽한 화전민들의 삶의 흔적도,
빌어먹으며 하루하루 연명해야 했던 이들의 아프고 가슴 절절한 사연들도
이제는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습니다.
'산이 머물러 마음을 닦는 곳이라면,
고개란 떠나며 마음을 풀어 놓는 곳이다.'라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만남의 설렘과 이별의 아픔 등을 남기며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길입니다.
제게는 가장 길고도 힘든 산행길이었지만
그렇게 버리미기재에 마음을 풀어놓고 집으로 향합니다.
다음의 만남을 위해서요....
그리고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챙겨주신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백두대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대간20구간_밤티재_화령재 (0) | 2010.04.14 |
---|---|
백두대간19구간_버리미기재_밤티재 (0) | 2010.04.08 |
백두대간18-1구간_이화령_지름티재 (0) | 2010.03.18 |
백두대간17구간_하늘재_이화령 (0) | 2010.02.19 |
백두대간16구간_벌재_하늘재 (0) | 2010.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