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20구간_밤티재_화령재

2010. 4. 14. 20:12백두대간

산행지:백두대간20구간_밤티재_화령재

산행코스 및 시간 : 12시간여

                           밤티재(04:12) - 문장대(07:21) - 신선대(07:57) - 입석대(08:20) - 천왕봉(09:04)
                           점심(~11:50) - 형제봉(12:11) - 비재(14:03) - 봉황산(15:43) - 화령재(17:07)
      
산행거리:도상거리 24km  GPS거리:27km


2.3년 마다 한번씩 치르는 지독한 몸살과 계획된 여행 등으로 19구간을 빠지고  거의 보름만에 산을 만나러 갑니다.

 


어둠속의 밤티재는 겨울이 가기 싫은 듯 보슬비와 함께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오르니 암릉구간이 시작되고,

 

 

 

 

 

 

 

 


유명한 개구멍 구간이 시작됩니다.

내린 비가 살짝 얼어 밧줄과 암릉이 위험합니다.
무거운 겨울 장비들을 집에 두고온 것이 후회되네요..

 

 

 

 

 

 

바위에 바짝 엎드려 기어가고,
때로는 밧줄에 의지하여 내려오다 보니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하다.'란 말씀이 생각납니다.

쉽게 나태해지는 편안하고 넓은 길보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진정한 삶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가르침이 아닐런지..

 

 

 

문장대 바로 아래 헬기장에서 주린 뱃속을 채우고..

안개 자욱한 문장대에 오르니 바람이 장난이 아닙니다.

문장대는 구름속에 있어 운장대라고 하다가 조선초기의 세조가
이곳에 와서 시를 지었다고 하여 문장대라고 불리웠다고 합니다.

이곳에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와
문장대에 세 번 올라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바람결이 전합니다.
그러고 보니 세번째 올랐네요,
바람결에 소원을 실어 보냅니다.

 

 

 

4월에 보는 상고대,
초봄 복장으로 인해 얼어버린 손과 몸은 고통스러우나 눈은 행복하네요...

 

 

 

 

절경에 혼을 빼앗긴 고승이
산봉우리에 백학이 춤을 추고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앉아 놀고 있어
쫓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신선대를 지나니 선경이 펼쳐집니다.

 

 

 

 

 

 

 

 

 

 

 

 

암봉들과 상고대,
그리고 언듯 언듯 보이는 파아란 하늘이 새벽의 고행길에 대한 보상을 해 줍니다.

 

 

 

임경업 장군이 7년의 수련끝에 누워있는 바위를 번쩍 일으켰다는 입석대에 잠시 들러보고,

 

 

 

 

 


갈 길은 먼데 아름다운 경치가 발목을 잡습니다.

 

 

 

커다란 돌문인 상고석문,
석이버섯이 가득 달려 있네요.
법주사를 지을 때에 천왕봉에서 벤 소나무들을 저장해 두었던 창고가 바로 상고이고
석문은 말 그대로 상고로 들어가는 돌문이라는 뜻입니다.

 

 

 

 

 

속리산 최고의 봉우리 천왕봉 도착
일제의 잔재인 천황봉이란 이름대신
천왕봉으로 이름이 바뀐 조그마한 정상석이 서있습니다.
천왕봉은 삼파수(낙동강, 남한강, 금강)의 발원지이며 13정맥의 하나인 한남금북정맥이 이곳에서 분기한다네요.

동쪽은 낙동강, 남쪽은 금강, 서쪽은 남한강으로 흘러들어 국토를 기름지게 합니다.


하늘이 개어 비로봉, 신선대, 문수봉, 문장대, 관음봉, 묘봉 등이 차례로 조망되고...
 
신라말 최치원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하는 구나
  산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떠나는 구나  
  道不遠人 人遠道
  山非離俗 俗離山

속리란 속세와 이별을 하고 수도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라 합니다.
하지만 지금에서는 세속의 산이 된지 오래입니다.

 

 

할배바위

뒤에 짐을 잔뜩지고 형제봉을 오르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는 형상이랍니다.

 

 

고도를 낮추며 내려오는 경사길은 진창길입니다.

 

  

충북알프스의 코스가 백두대간과 갈라지는 못재,
백두대간상의 유일한 고원습지라 합니다.
이곳은 후삼국시대 견훤이 목욕한 후 기운을 얻은 곳이랍니다.
견훤은 상주일대에서 세력을 키웠는데 지금도 화북면 북암리와 대궐터산에 성터가 남아 있습니다.

산 봉우리 몇개를 넘어 철계단을 내려서니 비재입니다.
날아가는 새를 닮았다해서 비조령이라고 했던 것이 비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은 눈앞의 오름을 거부하지만,
가다가 멈추면 아니감만 못하니...

상주시에서는 대간 등로에 백두대간이라는 안내판을 곳곳에 세워 놓았습니다.
이쪽은 백두, 저쪽은 대간!!
이왕에 돈들여 설치한 거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추가 할 수도 있을텐데...

봉황산 오르는 길은 길고도 지루합니다.

 


다행히 등로 옆에 피어있는 노란제비꽃들이 위안을 줍니다.

 

봉황산 정상,
봉황새가 30여년간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왜 30년인지?

둥그렇게 설치된 의자 역시 궁금합니다.
 
차갑고 강한 바람을 맞으며 지나온 길이
이제 끝이 보이네요.
고속도로도 보이고 화서면 일대가 지척에 보입니다.

 

 

산불조심 감시초소엔 사람이 없고,

 

 

생강나무와 진달래가 축하의 꽃다발을...

 

 

 


도로에 내려서 잠시 올라가니
산행종점인 화령재의 거대한 표지석이 보입니다.

날씨 탓에 진행이 좀 더 빨라져서 일몰 전에 산행을 마칩니다.
4월에 상고대와 함께 추위로 고생을 하다니.
정말이지 산은 신비롭습니다.

 
 산에는 알지 못할 무엇인가 있다.
 나무가 알지 못하게 자라고 있고
 흙도 알지 못하게 숨쉬고 있다.
 그리고 산은
 알지 못하게 우리를 품고 있다.

 

농부시인이신 서종홍님의 구절이 생각납니다.
다음 구간에는 잉태되는 생명들과 행복한 시간을 만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