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_공룡능선_속초

2008. 12. 21. 21:10산행/2007년 이전

 

대청봉 일출과 秋色이 완연한 공룡능선

강원 속초 , 2006. 10.  2(월) 맑음

 

 

 

 저녁 9시, 집을 나서 버스에 오르니 늘 상 그렇듯이 쉽사리 잠이 오질 않습니다.

 휴게소에서 같은 부서 사람이 주는 막걸리 한잔을 마시고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바다 저 너머 오징어잡이 배들의 조명이 계속 따라오는 가운데 눈을 떳다, 감았다 하다 보니 강릉인근 옥계 휴게소에 다다르고, 내려서서 맑은 공기를 들이키니 눈은 더욱 맑아져,

잠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부산한 오색매표소에서 신발끈을 고쳐 매고 어둠 속으로 대청을 향한 힘겨운 오름이 시작되고, 잠시 돌아보니, 땅에는 조명등으로 인한 긴 꼬리가, 하늘엔 보석 같은 별빛이 장관입니다.

 

 카시오페아, 북두칠성, 오리온자리 등등세상이 다 바뀌어도 영롱한 별빛은 옛날 그대로 입니다.

 별빛을 보니 오늘은 일출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가 되고,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대청에 오르니 해를 감싸고 있는 구름들이 발갛게 익어가고, 이윽고 불덩이를 토해냅니다.

 옅은 암회색의 구름과 비취색하늘, 황금빛의 해가 만들어내는 그림이 아름답기 그지 없어 눈이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환성도 잠시, 금새 숙연해지며 제각기 소원을 빌며 고개를 숙입니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겠지요..

 

 인간은 자연 앞에서 일개 미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듯 합니다.

 나 역시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새롭게 시작하는 큰 아들 녀석의 성공을 기원하는 염원을 보내봅니다.

 

 중청산장 주변에서 시린 손을 비벼가며 아침을 해결하고 공룡을 만날 급한 마음에 서둘러 희운각으로 향합니다.

 

 정상부 주변은 이미 단풍이 물들어 떠오르는 햇살에 온통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설악의 맨몸을 그대로 벗기어 눈을 돌릴 때마다 훌륭한 장면을 연출해주니 힘이 드는지도 모르고 희운각으로 향하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단숨에 내려섭니다.

 

 희운각에서는 아침을 해결하는 산객들로 인해 소란스러워 선경을 헤매다가 속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식수만 보충하고 곧장 공룡능선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무너미고개를 지나 가파른 바위 길을 힘겹게 오르다 신선봉에 올라서니, 눈앞에 펼쳐지는 내설악의 장엄한 경관이 한눈이 들어옵니다.

 

 

북동쪽 저멀리 여러 겹의 산 능선 너머로 흰빛으로 빛나고 있는 울산바위, 동쪽의 화채능선, 하늘 꽃이라는 천화대 범봉, 서쪽으로는 용의 이빨을 닮았다는 용아장성의 웅대하고 화려한 위용, 더 멀리는 서북능의 귀때기청봉과 삼각뿔 모양의 안산, 뒤로는 대청과 소청의 봉우리... 끝없이 펼쳐지는 암봉과 울긋불긋한 단풍..  

 

그 동안 몇 번이나 설악을 찾았지만 오늘처럼 멀리 동해까지 보일 정도로 쾌청한 날에 화려한 암봉들을 접한 적은 없었습니다.

특권을 누리고 싶다면 그만큼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가파른 암벽을 기어오르고...

하나를 넘어서니, 또 다른 등뼈가 눈앞에 버텨 서 있고...

잠이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선경에 넋을 놓아버렸는지 몸이 무거워 지며 입에서는 연신 물이 당기고, 그러나 눈은 하나라도 놓치기 싫다는 듯 연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네발짐승이 따로 없습니다.^^

 

한줄기 빛 되어 너의 품을 파고들고,

한 움큼 바람 되어 너를 안고 싶다.

 

사시사철 너는 움직임 없는데,

가슴의 요동을 알기나 하느냐.

 

넋 앗은 후에도 시치미 뚝 떼고,

방향 잃어 맴돌아도 미소만 지을 뿐!

 

제 풀에 누가 이기나 안달 난다.

 

심한 경사진 오르막길을 올라 공룡능선의 정점인 1275봉 안부에 도착하여 배낭을 풀어두고 꼭대기에 오르고 싶었지만 위를 보니 피곤한 탓인지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나 그만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합니다.

 

1275봉을 내려서는 길,

 

가을빛은 바람을 뚫고 나한봉에 부서져 내립니다.

암반에는 영겁이 묻어나고 홀로선 외솔과 풀뿌리는 같은 정감을 주고 받는 것이

보는 이의 가슴을 멍들게 합니다.

 

무너미에서 시작 된 공룡 능선은, 나한봉을 지나 마등령으로 내리는 바윗길에서 꼬리를 감춥니다.

말 등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진 마등령에 도착합니다.

 지친 몸을 쉬어 냉수에 적신 찬밥을 먹고 비선대로 향하는 하산길로 접어듭니다. 

 

 공룡능선은 설악의 꽃이며, 가서 본 자 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예술입니다.

설악의 아름다움을 모두 모아, 내설악 외설악을 아우르며 침봉(針峰)으로 솟아오른, 기암괴석의 바위 능선과 천인단애의 벼랑과 고사목과 노송, 활엽수의 단풍으로 물들인 환상의 꿈길입니다.

 누군가 산을 왜 가냐고 묻는다면 이곳을 데려오면 그 답이 충분히 되리란 생각이 듭니다. 

 

마등령에서 건너 보이는 범봉, 천화대 능선은, 천태만상으로 깎여 뼈골이 허옇게 들어 나 있는 줄을 알고 있는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설악골이 눈앞을 왔다 갔다 어지럽히며 끌어당기네요,

구구절절 솟고 패대는 것이 보는 눈 아려, 내리는 길이 야속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비선대를 지나 속세로 접어드는 길,

 엄습해오는 졸음과 고통이 더 심하게 느껴지는 것은 선경을 떠나고 싶지 않은 아쉬움이 아닌지……

 버스에 기대니 또 다른 선경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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