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22. 15:59ㆍ국내여행
일자: 2005.01.14~01.15
새해가 밝아온지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상은 수렁의 늪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과거의 구태의연한 습관에만 집착되며 진전없는 일상만 연속되고 있는 듯 하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바쁜 마음이 잠을 털어버리려 애를 쓰지만 야근을 마치고 하루가 지난 터라 몸은 쉽게 따라주지 않는다.
조바심을 내며 어제 저녁에 꾸려두었던 배낭과 준비물을 다시 보면서 입으로는 연신 가족들을 깨우는 고성을 남발한다.
대둔산에 10시 이전쯤 도착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하며, 무엇보다도 초행길이라 마음이 자꾸만 급해지는지도 모른다.
차 안에는 어제 저녁부터 날라다 놓은 살림살이며, 이불이며…. 누가 보면 마치 야반도주하는 것으로 오해 할 만큼 피난민 차량 그 자체이다.
아이도 별 투정없이 눈을 비비며 제 옷을 찾아 입는 모습이 별세계로의 여정에 나름대로 기대가 많은 듯도 하다.
부디 가슴 깊이 남을 수 있는 여행이 되길~~, 그래서 아이의 삶이 더 윤택하게 되길….
새벽안개를 뚫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남대전을 지나 추부IC에서 내려서니 한적한 지방길에 긴장이 풀린다. 멀리 대둔산 자락이 위용을 드러내고 이제야 오는군! 하며 반기는 듯하다. 얼마나 오고 싶었던 산인가!!!
하지만 늘상 그렇듯이 오기전엔 신비한 산이지만 막상 와서 보면 늘 보아오던 수수한 우리의 산인 것을……
서울 처제식구는 차량수리로 인해 도착이 늦어져 우리 먼저 등반을 시작한다.
잔설이 남아있고 직벽에 가까운 오름에 돌무더기가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밧줄에 의지하고 암벽에 박아놓은 발받침 쇠고리를 붙들고 씨름하듯 오르며 차오르는 거친 숨에 정신마저 혼미해져도 산이 나에게 준 행복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가슴은 더 따스해지고 온 몸 구석구석 까지 뜨거운 피가 넘치는 것 같다.
아기자기한 암릉의 조화 속에 푸른 생명을 잉태해 굵고 튼튼한 나무들을 훌륭히 키워내고 있는 자애로운 산의 모습역시 우리 인간에게 커다란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중국의 시인 이백이 "한 말의 술을 마시고 빈산에 와 누우니 하늘이 그대로 이불이로다” 라고 했듯 등을 붙이고 하늘을 보니 그렇게 편안하기 그지없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처제네 식구와 합류하여
산아래 비빔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신성리갈대밭으로~~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지뢰를 밟은 이병헌이 북한군 병사에게 “살려주세요”하고 소리치는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갈대의 키가 2~3미터는 족히 된다.
영화를 만드는 예술가들의 안목이 새삼 존경스럽다. 이런 곳은 언제 발굴했을까?
다시 철새도래지인 금강하구둑으로 갔으나 이미 때가 늦은 듯, 보고싶던 가창오리 군무는 떠나고…..
전시해둔 철새관련 교육자료들을 애를 써가며 이것저것 보여주고 설명을 해주어도 아이들은 도통 관심이 없다. 왜 나를 닮지않았을까?......
숙소인 희리산 자연휴양림은 호수와 산이 잘 조화된 아름다운 곳이다.
관리인에게 애써 웃음지어가며 원래 예약된 방이 아닌 경치좋은 호수가에 빈 방을 빼는데 성공,
포항에서 사간 영덕게를 안주삼아 푸른 밤을 보낸다.
과음한 탓인지 무거운 머리를 들고 휴양림 뒤에 있는 희리산을 올랐다. 노을의 동네에서 아침산행이라~~
신비의 바닷길이 열린다는 무창포 해수욕장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물때정보에 의하면 11시 이후부터 바닷길이 열린다.
언제부터 갯벌에 들어가 조개랑 게를 잡고 싶어 했었는데, 바로 눈앞에서 바다가 들어오라며 길을 열어주기에 아이의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졌다.
시간이 갈 수 록 멀리 섬과의 길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동네주민과 관광객이 어우러져 서로 먼저 가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전방엔 석대도가 바다위에 길게 드러누워 있어 친근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아이와 함께 조개를 주으랴, 바위틈에 있는 게를 잡으랴 하다보니 두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뱃속에서 밥 달라는 신호가 온다.
인터넷에서 봐둔 조개칼국수가 그렇게 맛있다는 서해실비횟집을 찾아 춘장대부터 선도리까지 몇 번이고 헤맨 끝에 달콤하고 감칠 맛나는 칼국수로 뱃속을 달래준다.
여행으로 지친 몸으로 여러 곳을 관광하기보다 여유있게 휴양림에 머물려고 조개랑 국수를 사서 휴양림 입구로 달려가니 노오란 해바라기 모양의 작은 꽃들이 먼저 반긴다.
저수지가 보인다 싶었는데 금방 관리소와 숲속의 집들이 눈에 들어 온다.
도착시간 ,3시 40분 경이다.
오늘은 저수지 주변의 방은 없어 휴양관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오르다 보니 낮 익은 사람의 이름이 보여 다시 보니 강릉 이모부의 시가 벽에 걸려있다. 산림청 공무원이면서 시인이라 유명세를 타고 있음에 뿌듯함과 존경심이 밀려온다.
[ 간 벌 ]
솔아!
알고 싶지도 않으냐?
왜 내가 네 곁에서
오래 오래
머무르고 싶어하는지
너희들 중에서
힘 없고 못생긴 형제들만
데려가야 하는지
건강하고
힘 좋은 형제들을 남겨 두는지
솔아!
먼 훗날
네 키가 자라
하늘의 별을 만날 때쯤
옛날
어떤 산지기가
왜 너희들을 지켜보며
함께 오랫동안 살고 싶어했는지….
평생을 소탈하게 살아오신 그 분의 족적을 따르고 싶다.
그 분 앞에만 서면 하염없이 부끄러워지는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며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짐해본다.
아이들과 휴양림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고 선도리에서 사온 조개등으로 저녁을 대신하면서 마음은 벌써 내일 돌아갈 직장 일로 바쁘다.
여행은 돌아옴을 전제로의 떠남이 듯,
영원한 것은 없으며 끊임없이 변하는 일상임으로,
또 다른 떠남을 기약하며 이번 여행을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