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22. 16:07ㆍ국내여행
경주 외곽 , 2006. 11. 4(토)~5(일) 맑음, 비
몇 번이고 망설이다.
아내의 동참한단 말 한마디에 덜컥 참가신청을 하고,
등산화는 죽음이라기에 마라톤 하시는 선배님의 고견을 참고하여 조깅화 장만하고,
우리 동네에서 단체가 참가하는 소식을 듣고 한 자리 부탁하였으나,
이미 늦어 자리가 없다네요,
어쩔 수 없이 아내와 둘이서 운동화 길들이기 일주일여,
하지만 짧은 시간에 길들여지지 않는 운동화를 등산화로 대체하고,
야근인지라 미리 하루 전 휴가를 내어 컨디션 조절을 마치고, 경주로 향한 마음은 어린애 소풍 가듯 날아갑니다.
황성공원 실내 체육관 앞에는 이미 전국에서 몰려온 동족? 들이 활기찬 움직임을 보이고,
배번을 받아 배낭에 달고 현란한 식전행사에 축제분위기를 만끽하며 조금은 흥분된 기분으로 행복한 출발을 합니다.
주위에는 국토 순례단, 마라톤 클럽들, 교사가 인솔한 고교생들, 운동 동호회 회원들, 가족, 친구들...
발옆으로 찰랑이는 물결이 그리 다정할 수가 없습니다.
흐릿하게나마 옛날 아버지 손을 잡고 낚시를 하러 왔던 기억이 문득납니다.
유명 관광지가 되어버린 보문호 주위는 밤의 흥청거림으로 적막감은 사라지고 서둘러 암곡으로 들어서야 어둠과 달빛 속에 몸을 숨길 수 있었습니다.
약간 흐린 날이었지만 보름달은 투명하게 길을 비추어 전등없이도 충분히 걸을 수 있게되자 우측으로 덕동호가 달을 머금은 채 반겨줍니다.
호수가 있고 밝은 달이 비치는데 술이 없네요,
길가 가게에서 잽싸게 막걸리 한 병을 챙겨 아내가 볼세라 배낭에 챙겨 넣고….
어둠 속에 피어 오르는 물 안개가 주위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옛날 낚시하러 상염이와 왔던 기억을 하며 가는데,
낯선 이의 방문에 놀란 개들이 우왕좌왕 짖어대어 조용한 시골마을에 하나 둘 불이 켜지고, 문이 열립니다.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년에 한번 오는 불청객들이지만 경주시민이라면 이해해 줄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상념에 젖어 듭니다.
약간의 휴식 후 첫번째 체크포인트에서 확인도장을 받고 나자 갑자기 가슴에 차고 다니던 전등이 없어 진 것을 알고 배낭을 풀어두고 왔던 길을 뛰어 가보았으나,
이미 없어지고..
달빛이 너무 밝아 별 필요는 없지만, 늘상 산행시 앞길을 밝혀주던 손때 묻은 소품이라 아쉬움이 컸습니다.
호수위로 비치는 달빛을 보니 아쉬움은 저만치 물러나며 행복하지 않았던 과거의 시간속으로 다시 빠져듭니다.
외롭고 고통스런 사춘기 시절과 입대 전에 이 호수주변을 방황하던 그 시절…
아무것도 몰랐었지만 군대 가기 전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제대 후 펼쳐질 나의 삶에 대하여,
지금 옆에 있지만 그때는 정말 궁금했던 일생을 같이할 사람이 어떻게 생겼을지…등등…..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 그 당시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보입니다.
그때 품었던 원대한 포부는 다 어디로 가고 한낱 소시민이 되어 다시 돌아온 지금에사,
꿈은 과실나무처럼 바탕이 있어야 제대로 영근다는 진리를 이해할 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뿐 마누라 얻어 자식 키우며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 해야겠지요….
이런 저런 생각에 취해 걷다 보니 아내가 다시오고 싶은 아름다운 길이라는 덕동호 뒷길을 뒤로하고 감포로 향하는 차도를 지나 추령재를 향한 오르막에 접어듭니다.
길가에 길게 달린 백년 찻집의 초롱등이 나그네의 발길을 이끌고 있지만 무거운 다리는 이제 슬슬 고통이 느껴집니다.
추령터널을 뚫으면서 차량이 뜸해진 추령 옛 고개 길은 고개 정상에 신축된 찻집에서 아름다운 길로 만들어 관광객을 빨아 들이고 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별 다른 안목이 있나 봅니다.
정상에서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사발면을 받아 들고 아무렇게나 길바닥에 앉아 게걸스럽게 먹고 주위를 둘러보니 피난민 무리처럼 널 부러진 사람들로 북새통입니다.
동족의 정이 느껴집니다.
토함산으로 향하는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아내의 발가락 통증이 시작되고, 나 역시 무릎통증이 심해짐을 느낍니다.
불길한 예감이 들면서 이제 고통과 싸워야 할 시간이 도래했고, 고통을 즐기며 완주하리란 다짐을 다시 해봅니다.
길 가엔 지쳐 드러누운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묵묵히 걷는 사람들도 다리를 절며 걷고 있었고 아예 회송하는 차량에 몸을 실은 이들로 관광버스는 만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버스를 세워 타고 싶지만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오른쪽 관절부위가 찢어질 듯이 아파옵니다.
같이 걷고 있는 아내도 고통이 심해 지는 양, 틈만 나면 주저앉습니다.
데리고 와서 죽을 고생을 시킨다는 생각에 후회가 되고, 나는 여지 껏 고생만 시키는 짓만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더 미어지네요.
이제는 버스에 태워 보내야겠습니다.
멀리 산중턱에 아름다운 조명으로 장식된 장항사지 석탑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우뚝 솟아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제 석굴암까지는 한 시간여…
죽음의 오르막길이 버티고 있습니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 왔습니다.
주최측에서 건네주는 따뜻한 꿀 차 한잔을 받아 들고
고통으로 인한 단맛은 이미 느끼지 못한 채 순간적으로도 몇 번씩이나 너무도 많은 생각에 제 자신도 혼란스럽습니다.
아내의 배낭에 무거운 것들을 옮겨 담으며,
죽어도 여기서 포기할 순 없다라는 굳은 의지와,
어둠 속으로 혼자 보내야 하는 아내가 측은하여
‘내년에 또 오면 되지..’ 라는 생각이 수십 번이나 교차한 끝에
결국은..
출발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야 말았습니다.
10시간 넘게 산행을 해도 이렇게 다리가 아프지 않았는데 잘 닦여진 길을 걷는데 이토록 아플 줄은..
인생도 이와 같겠지요,
잘 닦여진 길을 걷는 이보다 차라리 굽이굽이 골짜기를 넘는 이의 인생이 삶의 참 맛을 알며 차라리 행복하다는 것을….
버스 안에서 이미 골아 떨어진 아내의 얼굴과 길 옆을 사력을 다해 걷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서 한없는 자책감과 실망감에 빠져듭니다.
무엇보다도 포기를 했다는 자신이 자꾸만 싫어짐이 느껴지고, 내년에는 혼자 참가해야겠다는 다짐을 반복하다 보니 힘들게 올라온 길을 변명도 없이 차는 미끄러지듯 내려갑니다.
가슴에 남은 절반의 성공이 다리의 통증을 더해주네요……
하지만 25년여 만에 다시 찾은 나의 젊은 시절을 회상할 수 있어 좋았던 시간으로 기억하겠습니다.
내년을 기약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