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22. 16:50ㆍ산행/2007년 이전
지리산 영신봉
2007. 11. 12(월) 맑음
대성리→음양수→세석평전→영신봉→삼신봉à 청학동(10시간)
누가 죽어 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롬 속에서
물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애터지게 부르면서 살아온
그 누가 죽어 가는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이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가을 저녁의 시'- 김춘수(1922~2004)
미국 경제의 영향으로 주식이 폭락한 가운데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한가닥 위안처를 찾아 자정이 넘은 시간에 버스에 올라 밤새워 지리산의 품으로 파고듭니다.
여명이 밝아오는 대성리엔 개짖는 소리만이 요란하고, 가로등 불빛속에 덩그러이 놓여있는 안보역사관이 을씨년 스럽습니다.
불행한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한 구석에서 아내가 싸준 김밥을 억지로 밀어넣고 나니 새벽추위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흔들어 댑니다.
이제는 완연한 겨울의 문턱이니 장비들도 모두 동계용으로 바꾸어야 할 것같습니다.
다락논 같이 가꿔놓은 녹차밭을 지나 앙상한 가지들로 하늘이 훤히 보이기 시작하는 등로를 오르길 3시간여..
하늘이 터지면서 여명 속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지리의 능선들이 눈앞에 다가옵니다..
우리나라 4대 명산에 걸맞는 대단한 산군입니다.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인 음양수에 도착하여 시린 약수로 땀을 식힙니다.
가까이 세석대피소가 고요 속에 잠겨있고, 그 옆으로 촛대봉이 하늘을 찌르고 서있습니다.
작년 여름에 찾아왔을 때에는 철쭉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연상케 하더니 초겨울의 세석은 황량하게 느껴지네요.
세석산장을 보니 시장끼가 느껴져 발걸음이 바빠집니다.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을 먹고 촛대봉쪽을 바라보니 희끗희끗 상고대가 보여 올라가고 싶었지만, 갈길이 먼지라 서둘러 내려서고….
휴대폰엔 아내와 처제의 문자가 들어와 있네요,
마음껏 즐기고 오라는 아내와, 동서의 병세 때문에 고생이 많은 처제의 부럽다는 말..
동서가 빨리 쾌차하여 처제와 함께 이곳을 다시 찾을 수 있길 기도해봅니다.
산에 간다면 새벽이고 한 밤중이고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해주는 아내,
함께 인생을 살아갈 동반자가 있다는 것이 늘 고맙습니다.
2,30대에서는 느끼지 못한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새록새록 느끼는 것을 보면..
내가 사십의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건 사실인가 봅니다.
하지만,
아직 푸른 젊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겠습니다.
아직 할 일이 많은 것에도 감사하고,
여전히 뜨거운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있는 것에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삼신봉으로 향하는 능선은 좌우로 펼쳐지는 지리산 전체 조망이 시원한 곳입니다.
뒤돌아서면 좌측으로 노고단이 멀리 보이고 우측으로 가면서 반야봉 – 덕평,칠선 – 영신,촛대 – 연하봉 – 제석봉 – 천왕봉까지…
이런 장쾌한 능선 때문에 지리산을 늘 찾는 것이 아닐까요?
3시간여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걷다 보니 삼신봉에 도착합니다.
저 아래로 오늘의 마침 점인 청학동이 보이네요.
속세를 떠난 사람들이 살아오던 곳,
하지만 지금은 아닌 곳.
잡다한 생각으로 내려서는 길에 너덜지대를 통과하다 바위에서 미끌려 넘어지는 순간,
뒤로 넘어지면 큰일이란 생각에 스틱에 의존하여 몸을 돌려 앞으로 넘어지니 손목이 부러진 것처럼 통증이 오고 스틱은 엿가락처럼 휘어져 내동댕이쳐 있습니다.
손목을 돌려보니 심한 부상은 아닌 것 같아 안도하자, 분신 같던 스틱 한 개를 잃은 것이 너무 아깝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크게 다치지 않도록 도와준 지리산의 힘에 감사를 해야겠지요…..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