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22. 16:47ㆍ산행/2007년 이전
만산홍엽 가야산
2007. 10. 29(월) 맑음
백운리→서성재→칠불봉→상왕봉→해인사(6시간)
작은 아들의 포항예술고 합격 소식을 듣고 뿌듯한 마음으로 새벽 길을 나섭니다.
합격 발표일이 당겨져 원래는 오늘 가야산에서 합격을 기원하려고 했었는데…
올해 마지막 농사가 잘 마무리되어 무난히 또 새해를 맞이 할 수 있을 것도 같네요.
그토록 가지고 싶어하던 휴대폰을 이젠 사 주어야 겠습니다.
영천 청통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 꺼내들고 주위를 둘러보니 단풍으로 물든 산허리에 안개가 서린 모습이 좋습니다.
백운동 주차장에서 백운교를 지나 형형색색의 단풍 터널속으로 산행이 시작됩니다.
도토리를 먹고있던 다람쥐가 인기척에 후다닥 달아난 자리에 선홍색의 단풍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선듯선듯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이제 다가올 겨울을 알리고 있습니다.
아! 또 한 해가 지나가네요,
매년 이맘때면 아쉬움에 또 다시 내년을 기약하는 것을 보니 세상 참으로 잘 못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번 겨울에는 큰아들이 군에 가고, 내년 봄이 오면 작은아들이 고등학생이 됩니다.
오지 말래도 꾸역꾸역 오는 세월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만, 내년에도 이맘때 산에 올라 똑 같은 생각을 한다면 나의 미래는 무미건조할 것입니다.
온갖 잡다한 생각에 잠겨 오르다 보니 어느 듯 서성재에 올라서고,
서장대 라고도 하는 이곳에서 옛 가야 산성터를 지납니다.
세월에 나뒹구는 성터는 이제는 무너져 너덜지대처럼 변해있어 서럽기 그지없게 보입니다…
경사면이 점점 높아갑니다. 이제부터 암석을 차고 오르는 계단길이 연이어지며, 탁트인 산자락은 완연한 가을창공을 바라보게 합니다.
한참을 이어지던 계단길이 끝나고 드디어 칠불봉에 오릅니다.
저 앞으로 기암능선을 타고 상왕봉이 수려하게 눈에 들어오네요.
사방으로 펼쳐진 산자락들 위로 단풍이 불타고 있습니다.
200여 미터를 더 올라 최고봉인 상왕봉(1,430m)에 다다릅니다.
상왕은 열반경에서 일컫는 모든 부처를 뜻하는 말입니다. 또한 상왕봉을 우두봉이라고도 하지요.
소머리형상과 같다는 것인데...소를 신성시하여 제를 올리게 된 데서 유래 한다고도 합니다..
아마도 가야국 시절의 풍습인지도 모를일이겠지요…
정상부 아래 양지바른 곳에서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기 시작하자 겨울을 재촉하는 심술스런 바람이 손을 얼려버려 젓가락질 하기에도 어려움이 따릅니다.
턱을 덜덜 떨며 밥알을 삼키고 서둘러 하산길에 접어듭니다.
해인사로 내려서는 하산길은 비교적 무리없는 평이한 길입니다.
무릎높이의 산죽길과 낙엽이 정갈하여
조용히 생각하며 내려오는 산책길입니다.
이 동네가 고향인 박노수씨가 생각나서 문자한번 날리고,
함께 생활했던 추억을 되새겨 봅니다.
처음 만난지가 벌써 16년여, 커가는 아이들과의 좋았던 추억들이 스쳐가네요,
좋았던 것만 기억해 두렵니다….
해인사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오늘은 성철스님의 기일인지 더욱 인파에 허덕이는 숨막힘이 있습니다.
“산은 산이오 물은 물이로다” 라고 하시던 성철스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같은 시대에 그 분의 모습을 뵈였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한사람 현인이 가고 없음에 아쉬움도 남습니다.
누가 건네준 막걸리 한 사발을 들고 홍류동 계곡에서 그윽히 젖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