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23. 16:33ㆍ산행/2008년
지리산 서부능선
산행일자: 2008. 6.13(금) 맑음
산행코스: 성삼재 - 노고단 - 임걸령 - 반야봉 - 삼도봉 - 화개재 - 뱀사골(7 시간)
뱀사골에서 쓴 편지
고 정 희
남원에서 섬진강 허리를 지나며
갈대밭에 엎드린 남서풍 너머로
번뜩이며 일어서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 한 자락이 따라와
나의 갈비뼈 사이에 흐르는
축축한 외로움을 들추고
산목련 한 송이 터뜨려놓습니다
온몸을 싸고도는 이 서늘한 향기,
뱀사골 산정에 푸르게 걸린 뒤
오월의 찬란한 햇빛이
슬픈 깃털을 일으켜세우며
신록 사이로 길게 내려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아득한 능선에 서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레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앞서가는 그대 따라 협곡을 오르면
삼십 년 벗지 못한 끈끈한 어둠이
거대한 여울에 파랗게 씻겨내리고
육천 매듭 풀려나간 모세혈관에서
철철 샘물이 흐르고
더웁게 달궈진 살과 뼈 사이
확 만개한 오랑캐꽃 웃음 소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 ..
비온 뒤의 날이라 그런지 성삼재의 하늘이 너무도 맑습니다.
노고단을 거쳐 돼지령으로
녹음 사이로 구례방면이 보입니다.
주 능선을 따라 멀리 천왕봉이 어서 오란 듯 손짓하고..
일행에서 잠시 벗어나 반야봉으로 내달립니다.
소망이 있기 때문이죠, 산에서 기원하면 왠지 잘 풀릴것만 같아서...
평일이라 한산해서 좋았습니다.
삼도봉으로 향하는 길옆에서 야생화가 속마음을 읽었다는 듯 환히 웃으며 반겨주네요..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경계점인 삼도봉입니다.
곤충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화개재를 지나 뱀사골로 접어듭니다.
짙어진 녹음과 시원해진 계곡물 소리가 여름을 재촉하고,
아픈 역사도 잘 보듬고 있습니다.
문득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 등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치솟는 유가로 인한 화물연대 총파업 등 어느때보다 시끄럽고 암울한 정국이 갑자기 걱정스러워 지네요..
모든 근심들을 계곡을 지나는 바람들에 날려버리고 싶습니다.
잠시 동안의 평화로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