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22. 16:34ㆍ산행/2007년 이전
지리산 바래봉(俗離山 1,167m )
전북 남원 운봉면, 2006. 5. 14(일) 맑음
팔랑치의 철쭉
그대 바라볼 수 있음은
소리치지 못하는 환희입니다
화냥기라구요?
아니에요, 그저 바라만보다 시드는
바래봉 노을입니다
아니 노을 같은 눈물입니다
눈물 같은 고백입니다
바래봉 철쭉 / 권경업
모처럼 아내와 오붓하게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을 찾았습니다. 심심한 친구 아내도 동행하여 두어시간여 만에 도착한 작은 고을 운봉은 지금 바래봉 철쭉 축제로 한창 잔치 마당이 되어 있습니다.
전국에서 밀려든 관광버스들이 길가에 성냥개비 이어둔 듯 주차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사람들로 지치게 될 고행길이란 예상이 됩니다.
사람들이 많은 주 등산로를 피해 지름길인 급경사의 코스를 잡았으나 구석구석 사람이 없는 곳이 없으나, 기온은 서늘하여 산행하기에는 아주 쾌적한 날씨입니다.
새순을 내밀었던 나무들도 이제는 연록에서 진록으로 변하고, 숲길이 깊어지면서 산빛도 깊어지는데, '휘파람새'의 청아한 소리가 산속에 메아리 집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새소리네요" 아내의 즐거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는 것을 보니 사람들로 인한 짜증보다 천상의 화원에 대한 기대감이 큰 모양입니다.
숲길 벗어나 산등을 가로지르는 임도로 올라섭니다.
임도는 능선을 따라 바래봉 정상 바로 아래까지 이어지고, 3~4m 너비의 도로 한복판은 화강암을 쪼아다가 불럭을 만들어 깔아 놓았습니다.
블럭위에 올라서니 발바닥이 아픕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블럭을 피하여 맨 땅을 밟으며 지나가는 바람에 가장자리의 산길이 또 훼손됩니다.
산에는 다녀보지도 않은 한심한 공무원들,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던가, 강원도 민둥산처럼 나무칩으로 해두면 생태적으로도 좋고 밟는 촉감도 좋고…. 꿍시렁대고 있는데 친구 아내가 임도에서 팔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사서 건네줍니다. 시원한 맛으로 짜증을 날려버립니다.
길가로 무리를 이룬 철쭉이 환한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합니다.
산비알에도 연록빛 숲에 어울어진 철쭉이 화사합니다. 임도를 따라 굽이 굽이 돌아 나가면서 철쭉과 숲의 파노라마 속에 산정의 산빛은 한껏 맑고 밝은 빛으로 빛나고 시야는 사방으로 거칠 것 없이 트입니다.
운봉읍내 옹기 종기 모여선 집들을 벗어나면 한창 모내기가 시작된 들녘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그런데, 길이 높아지면서 철쭉은 핀 것 보다는 봉우리 진 것들이 많아집니다.
예년에 비하여 절기가 늦게 찾아와 산정의 꽃이 만개하려면 두어 주는 지나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정상아래 남사면에는 주목나무를 조림하여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그 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마치 순례자들처럼 정상으로 향하는 것이 보입니다.
정상에는 새까만 개미들처럼 사람들로 붐비어 사진찍을 틈도 없어 점심식사를 할 적당한 곳을 찾아 도시락을 먹고 팔랑치로 향합니다.
삼거리에서 정령치 방향으로 2~3km에 걸쳐 팔랑치를 중심으로 철쭉의 군락지입니다.
아직 개화가 50~60%에 불과한데도, 이미 불타는 화원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무에 따라, 위치에 따라, 북편에는 아직 눈도 뜨지 않은 것으로부터 막 벙그러지고 있는 것, 완전히 개화한 것에 이르기까지 팔랑치 언덕은 상상을 불허하는 아름다움으로 덮여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탄성이 쏟아지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연분홍에서 흰빛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보면 꽃은 같은 빛깔이 없이 각양각색입니다. 더구나 연록색의 산자락에 어울어져 신비스런 자연의 조화는 눈과 마음을 놀라게 합니다.
한편에서는 피고 한편에서는 지면서 바래봉의 철쭉은 한달 동안을 이어간다고 합니다. 올해는 지금 상태로 보아 오월 말경이면 피크를 이루면서 예년에 없이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입니다.
하산 길에 친구의 아내가 그만 미끄러져 손바닥에 상처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 외로운데 상처까지 입었으니…마음이 좋지가 않네요.
한창 모내기가 시작된 운봉의 들녘을 뒤로하고 내년을 기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