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_고성

2008. 12. 22. 17:28해외산행

  금강산(1,638m )

강원도 고성, 2007. 8. 6~ 8.8 흐림

 

 

 [ 여행일정 ]

  .8/4  호산

  .8/5  호산 정동진 대관령자연휴양림

  .8/6  대관령자연휴양림 화진포 -  금강산관광특구

  .8/7  구룡연 상팔담 교예공연

  .8/8  해금강 삼일포  - 호산

  .8/9  호산 포항

 

요산요수(樂山樂水)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이아즉(而我卽) 등산이소(登山而笑)하고 임수이곡(臨水而哭)하였다.

                

"산을 즐기고 물을 좋아 하는 것은 사람의 상정이다.

그러나 나는 금강산을 구경하며 산에 올라서는 웃기만 했고

물에 임해서는 울기만 했노라"

 매월당 김시습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를 피해 올해는 제대로 된 피서를 하겠구나 생각하며,

1근 근무를 마치고, 찌는 듯한 포항을 벗어나 식구들과 함께 처가집으로 가서 이미 도착해 있는 서울 처제네와 합류합니다.

 다음날 중간기착지인 대관령자연휴양림으로 가기 위해 장모님을 모시고 가는 길에 강릉의 정동진을 둘러보고 오후에사 휴양림으로 들어가 강릉 둘째 처남과 합류하여 밤을 지내고 

 

 

 

 

 시원한 물소리와 물안개속에 잠들어 있는 휴양림을 떠나며 장모님과 처남식구들도 동행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속초를 지나 화진포에 도착, 시간이 남는 관계로 화진포에 위치한 이승만별장을 구경하고 화진포 아산휴게소에 들러 관광증을 수령하고 남측출입사무소에 도착합니다.

 

출입사무소에는 금강산을 가기 위해 먼저 온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고 잠시 후 수속을 밟은 후 관광증에 부여된 조별로 버스에 탑승합니다

조장의 여러가지 주의사항을 들으며 버스는 군사분계선을 향해 통일전망대를 지나고, 드디어 군사분계선을 넘어갑니다.

군대시절에 금강산가던 철길을 걸으며 내 생전 금강산을 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까무잡잡하고 작은 인민군들이 서 있는 길로 금강산을 들어가고 있다니..

설레임에 곧이어 우측으로는 바위로 이루어진 구선봉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북측출입사무소, 천막속에서 칼칼한 인민군 검사관의 도장을 받고 다시 차에 오릅니다.

 

처음으로 북측의 민가가 눈에 띄며 좌우측으로 펼쳐진 농경지에는 옥수수밭이 주축을 이루고 토질과 지형, 기후 차이도 있겠지만 남측의 농작물과 달리 생육이 부진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달리는 차 창 밖으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민간인들,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과 저 멀리 군인들이 동원되어 작업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순간 돌아가신 아버님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같이 오셨다면 아주 좋아 하셨을텐데..

 

16시경에 금강산 온정각 지구에 도착합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암봉들, 설악산 지구와 유사한 듯하지만 규모가 더 큰,

감탄사가 절로 나오며 잠시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보고, 숙소인 구룡마을에 여장을 풉니다.

단체여행객을 위해 만든 조잡한 숙소였지만, 금강산을 보고 작은 불편은 잊기로 하며 내일 중식과 오후 교예공연을 보기위해 예매를 하고, 식사를 마친 후 골프연습을 무리하게 하여 허리가 아픈 이서방은 휴식을 취하고 일행은 온천장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유명한 온천장에 들어가 하늘과 산봉우리가 보이는 야외온천에서 몸을 담그니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비가 올 것이라는 불안감에 눈을 떠서 밖을 보니 구름만 많은 채 비는 내리지 않아 서둘러 조식을 마치고 첫 코스인 구룡연 답사길에 오릅니다.

셔틀버스로 이동하는 도중 현재 복원 공사중인 신계사를 버스안에서 바라봅니다.

 

옥류동 입구에 있는 신계사는 519년(법흥왕 6) 신라의 보운조사가 창건하였으며, 유점사, 장안사, 표훈사와 함께 금강산의 4대 사찰로 꼽혔다고 합니다.

 큰 절이었으나 6·25전쟁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지고 삼층석탑과 터만이 남아 있었던 것을 2004년 대한불교조계종과 현대아산, 북한측 조선불교도연맹이 공동으로 대웅전을 복원하였고 명부전을 비롯한 나머지 11개 전각도 2007년까지 불타기 전의 상태로 복원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목란관 입구 주차장부터 답사길이 시작됩니다.

 

 

답사길은 넓고 좋은 편이며 어디 한군데 오염된 곳이 없습니다.

중요한 곳에서는 북측 환경해설원의 설명과 함께 주석비와 바위글을 자주 만나게 되고 기암괴석의 봉우리들은 내 시선을 놓아주질 않고……

 

 

▶ 북측 식당 목란관 - 음식과 주류를 판매하고 있음

 

 

 

 한 굽이를 돌아가니 산삼, 녹용이 녹아 내린다는 삼록수 약수터가 보여 한 모금 했으나 지하수가 아닌 표층수라 미지근하여 실망.하고, 만경다리를 건너니 세존봉 쪽의 갖가지 기암괴석들이 조각을 하여 놓은 듯 황홀함에 빠져들게 하네요.....조금 더 진행하니 옥류동의 입구인 금강문에 이르게 됩니다.

 

안내원의 중간지점이라는 설명을 뒤로하고 들어서니 큼직한 바위들이 길을 가로막은 가운데 구멍이 상하로 뚫려있는데 돌계단으로 빠지게 되어있고, 금강문 아래 조망이 좋은 곳에서 왼쪽으로 마주 바라보이는 세존봉의 절벽은 차곡차곡 쌓아놓은 돌성같기도하고, 어느 곳은 누룩을 겹겹이 쌓아 놓은 듯 합니다.

 

 

그 위에 토끼바위 또는 거북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옥황상제의 명을 어겨 벌을 받아 바위로 변했다는 토끼에 관한 전설이 담겨있다고 하네요.

 

금강문에서 조금 오르니 앞이 환히 트이면서 아름다운 옥류동 절경이 한 눈에 펼쳐집니다.

옥류동은 예로부터 수정같이 맑은 물이 구슬이 되어 흘러내려 왔다고 하여 불러진 이름이라고..

옥류동 골짜기 안은 사면을 둘러싼 봉우리들에 의하여 골안 풍경이 더없이 황홀합니다.

수정을 녹여서 쏟아 부은 듯한 푸른 소가 옥류담이며 문양 고운 흰 비단 필을 편 듯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폭포가 옥류폭포입니다.

 

연주담에서 약 50미터 가파른 길을 오르니 세존봉의 높은 중턱에서 바위벽을 타고 내리는 마치 봉황새가 창공을 향하여 은빛날개를 펴고 긴 꼬리를 휘저으며 나는 것 같다고 하여 비봉이라고 이름지어진 폭포가 막아섭니다.

높이가 139미터나 되다고 하며 예로부터 구룡폭포, 십이폭포, 옥영폭포와 함께 금강산의 4대 폭포라고 하는군요,

 선경에 취해 계속 진행하니 무용교에 이르고 3∼4개의 출렁다리를 지나 바위틈 사이를 따라 가느다란 은실과 같이 곱게 흐르는 곳인 은사류에 다다르고, 여기는 상팔담과 구룔폭포의 갈림길이어서 먼저 구룡폭포 쪽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일보이보삼보립(一步二步三步立), 산청석백간간화(山靑石白間間花)

약사화공모차경(若使畵工摸此景), 기어임하조성하(其於林下鳥聲何)

걸음마다 발 멈추며 눈을 돌려보니,  푸른 산 흰 돌 사이 간간이 꽃이로다.

그림쟁이 불러다가 이 경치를 그려 본들,  숲속의 새소리야 무슨 수로 그릴꼬 ( 김삿갓 )

 

 

 

 굉음과 함께 웅장한 구룡폭포에 다다릅니다.

폭포의 높이 74미터, 너비 4미터인 구룡폭포는 수량이 풍부하고 물안개, 무지개 등과 어우러질 때면 그 아름답고 장쾌한 모습은 말과 글로 형언키 어렵습니다.

폭포가 떨어지는 아래 바윗돌은 오랜 세월에 패이고 패여 13미터의 절구통 같은 둥근 호를 이루었고 폭포를 받는 아래의 이 못을 구룡연이라 합니다.

 주위에서 음료 등을 팔고 있는 북측 아가씨가 입고 있는 옷이 아내의 옷과 같은지라 아내가 옷이 같다고 하자 그렇다고 하면서 아주머니의 옷은 세탁을 많이 해서 색이 좀 바랬구만요라고 하여 한바탕 웃고, 고생한다 생각하여 비싸지만 사이다를 2병(8달러) 사주었습니다.

 

 

 

 

비가 간간이 뿌리지만 등산에는 무리가 없어 갈림길로 돌아와 무용교에서 오른쪽으로 연담교를 건너 상팔담으로 향하는 오름을 시작합니다.

맞은 편 바위벽의 북측지도자를 찬양하는 글을 어마어마한 크기로 새겨두어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20여분 진행하자 구룡대에 이르고,

 

절벽아래로 8개의 사파이어 덩어리 같은 소가 간격을 두고 계속 이어져 절경을 자랑합니다.

오른편 옆으로는 옥녀봉과 비사문, 세존봉, 천화대의 전 면모가 드러나며 북쪽으로 소옥녀봉과 관음연봉도 병풍처럼 둘러선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맑은 날에는 멀리 망망한 동해바다도 눈에 들어온다네요.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한 풍경이라도 놓지지않을 양, 구석구석을 눈에 담고 돌아섭니다.

 

山與雲俱白(산여운구백) 산과 구름은 모두하나

雲山不辨容(운산불변용) 구름과 산의 모습을 구별할 수가 없구나.

雲歸山獨立(운귀산독립) 구름이 걷히고 산만 홀로 솟아 있으니.

一萬二千峰(일만이천봉) 일만 이천봉우리라.

우암 송시열

 

목란관에 도착하여 예약해둔 냉면을 맛보았으나,

입맛에 맞지않고, 아이들도 반도 먹지 못하고 남겨 식량 사정이 어려운 북측에 슬며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아마도 인공조미료에 우리는 입맛을 버린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오후 삼일포 관광코스는 취소하고 16시에 교예공연을 보기로 하고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 후,

TV에서 한 두 차례 보았던 유명한 공연을 보기위해 문화회관으로 들어서니 객석 규모는 5백∼6백석 정도가 되는 것 같습니다.

평양모란봉교예단은 평양교예단과 함께 북을 대표하는 교예단으로 명실공히 세계 최고 수준의 교예단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 문화회관에서는 1999년도부터 공연이 시작되었고 인민배우와 일반배우들이 나와 공연을 하고 있으며, 관람료는 30$를 받습니다.

공연마다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특히 칼끝과 술잔을 이용해서 공중에서 펼치는 묘기는 사람이 할 수가 있는 일인지 의심스럽고, 심지어는 얼마나 피나는 연습을 많이 했을까 하는 동정의 마음까지 생깁니다.

90분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고 여기와서 유일하게 관람료가 아깝지 않았으므로 교예단의 단체 인사에 아낌없는 기립박수로 보답을 합니다.

 온정각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에 돌아와 내일 비가 내리지 않길 기원하며 두번째 밤을 보냅니다.

 

 빗소리에 눈을 떠서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만물상코스를 가야 하는데, 비가 내리면 아이들의 안전이 문제입니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수없이 갈등을 하고난 뒤 해금강으로 코스를 변경하고, 숙소의 짐을 정리하여 버스에 실어두고, 해금강으로 향합니다.

 북측도로를 따라 해금강으로 가는 길,

 들에 있는 농작물들은 생육이 부진하고 마침 초등학교 옆을 지나가게 되는데 시골이라 학생수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고 학교 건물은 폐교에 가까우며 길을 따라 까맣고 조그만 아이들이 비를 맞으며

 

인민군처럼 걸어가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일고,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들을 흘낏 보게됩니다. 

 

해금강은 강원도 통천군 국도로부터 고성군 영랑호와 감호, 군사분계선 이남의 우리쪽 영내의 화진포까지 외금강의 동쪽에 펼쳐진 아름다운 호수와 해안 및 바다 절경을 포괄합니다.

해금강 명승지들은 크게 삼일포구역, 총석정구역, 해금강구역(좁은 의미의 해금강)의 3구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해금강이라는 이름은 17세기말에 와서 처음으로 생긴 말인데 원래는 고성군 해금강리의 수원단으로부터 남강하구의 대봉도를 거쳐 화진포에 이르는 구간(좁은 의미의 해금강)의 명승만을 포괄하여 부르던 것이 오늘날 삼일포와 총석정까지 포함하여 해금강(넓은 의미의 해금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다위 덩그러니 기암의 모습을 제외하곤 별로 볼게 없어 한바퀴 둘러보고 삼일포로 향합니다.

 

삼일포는 관동8경의 하나로서 고성에서 온정리로 12km 가량 가면 북쪽 언덕 너머에 있는 석호로 북서쪽에 거암이 솟아 있고, 남쪽 호안에는 기암이 많은 구릉이 있습니다.

신라시대에 영랑 ·술랑 ·남석랑 ·안상랑 등 4국선이 뱃놀이를 하다가 절경에 매료되어 3일 동안 돌아가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삼일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평온한 호수에 섬과 바위로 어우러져 절경이며 정말 몇일 쉬어가고 싶은 곳입니다.

이서방은 흑돼지 굽는 냄새에 술 한잔하고 싶은 눈치라 삼일포를 배경삼아 막걸리와 흑돼지 구이로 잠시 신선이 되어보고..

잘 단장된 산책로를 걷다가 흔들다리를 건너면 두 개의 큰 바위가 나타나고 바위 위쪽으로 조금만 더 오르면 호수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봉래대에 이릅니다.

호수 한 가운데는 소나무가 있는 조그마한 섬이 있는데 위에서 보면 소가 누운 것 같은 형상이라고 하여 와우섬이라고 한답니다.

꼭 다시 찾아오고 싶고 그땐 몇일 머물 수 있길 바라면서 절경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번 여행은

 욕심과 증오로 잔뜩 오염된 마음을

과거 너나없이 가진 것 없던 시절을 회상하며

행복의 기준이란 것과 가족의 소중함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돌아가면 미래가 없는 여기에 비해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늘 상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야겠지요..

 

차창밖으로 보이는 북측 사람들, 농촌풍경, 군인 등 하나라도 잊지 않기 위해 눈을 떼지 않습니다.

북측출입사무소에 도착하여 심사를 받고 남쪽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으니 모든 것이 자유롭고..

 

山行忘坐坐忘行(산행망좌좌망행), 歇馬松陰聽水聲(헐마송음청수성)

後我幾人先我去(후아기인선아거), 各歸其以叉何爭(각기기이차하쟁)

 

가다가 쉬게 되면 다시 가기 잊어버려,  그늘에 말 메 놓고 물소리만 듣노라.

이 좋은 경치를 구경한 이 몇 몇인고,  제각기 오가거니 싸우지 말지어다.

 

일만이천봉이나 된다는 봉우리들을 언제 다 올라 볼까요?

지리에서 시작하여 수없이 걷고 걸어 설악을 넘어 단절되지 않고 비로봉을 지나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까지 대간길을 이어 갈 수가 있는 날이 올까요?

그날이 오길 진정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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