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23. 09:17ㆍ백두대간
산행일자: 2009.10.22(목) 맑음
산행코스 : 7시간 20분 소요
삽당령(09:10)-두리봉(10:28)-석병산(11:23)-고뱅이재(12:56)-점심-서대굴(14:21)-생계령(14:35)-자병산(16:01)-백복령(16:30)
오늘 구간은 비교적 짧은 거리인지라 이른 새벽(05:00)에 출발합니다.
여명이 깃든 동해 바다엔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오징어잡이배들의 조명등이 점점이 박혀있고, 그 뒤로 일출이 시작됩니다.
삽당령에서 도착하고
겨울을 재촉하는 스산한 바람이 간간이 불어와 체온을 앗아갑니다.
이제 겨울산행을 준비해야 할 듯....
삽당령 정상 오른편 나무계단으로 출발
언덕을 넘으면 임도가 나오고, 이러 가파른 길이 이어지고..
헬기장을 지나고..
겨울을 재촉하는 산중엔 단풍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습니다.
어른 키만한 조릿대 사이를 지나가고..
바람한 점 없는 따사로운 태양빛 아래로 평온한 길이 이어집니다.
마치 공원에 온 듯 시설이 잘되어있는 두리봉에 도착합니다.
두리봉은 정상이 두리뭉실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네요....
정상은 쉼터가 있으나 시야가 막혀 답답합니다.
헬기장으로의 이정표따라 사각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진행하니 마음이 평온하기 그지없네요...
저기 아래 백두대간 수목원인가 봅니다.
한번 가보고 싶군요..
이정표에 '일월봉'이란 생소한 이름이 있습니다.
일월봉이란 석병산의 정상 봉우리 이름이랍니다.
두개의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진 석병산 정상은 북쪽 봉우리이며 바위 봉우리 아래에 일월문이라는 큰 구멍이 뚫려져 있고
동해에서 달이 떠올라 그 달빛이 일월문을 비추면 장관이라 합니다.
암릉이 마치 바위병풍 처럼 생겼다고 해서 석병산
북동쪽으로 강릉시 일부와 동해의 푸른바다가 보이고, 멀리 고루포기산 일대도 보입니다.
생명의 보금자리,
이제는 성체가 되어 어느 산속에서 겨울을 준비하고 있겠죠...
고뱅이재,
누군가 써둔 글씨가 흐려져 회원님이 다시 쓰고 있습니다.
아직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서대굴 안내판입니다.
생계령을 지나고.. 이 고개에는 도토리나무가 많아서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이 고개에서 도토리 열매를 채취한데서 나온 이름입니다. 슬픈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아련한 행복이 느껴지는 것은 왜인지...
오늘 구간은 전망은 없으나 내내 편안한 길이 계속됩니다.
움푹꺼진 돌리네 지형이 주변에 많이 보입니다.
지하의 암반이 빗물이나 지하수에 녹아 구멍이 생기면서 지표면이 깔대기 모양으로 함몰하는 현상이며
정선 민둥산의 돌리네와 이곳 임계 카르스트 지역의 돌리네가 유명하다네요.
생계령의 재현, 쓴웃음 한번짓고...
처참한 몰골의 자병산 모습
시멘트원료인 석회석을 파내면서 아름답던 산의 정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산은 흰 내장을 그대로 드러낸 채 계속 파헤쳐지고 있고,
석회석을 캐고 운반하기 위해 차가 지나도록 만들어 놓은 간이도로는 멀리서 보니 마치 밧줄 같고 그물 같습니다.
산을 꽁꽁 동여 맨 듯 합니다.
자줏빛 병풍을 드리운 것 같이 아름다운 산이라 하여 자병산(紫屛山)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니고 있던 산은 그 곳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자병산은 해발고도가 1000m도 안 되는 산이지만 빼어난 자연경관과 생태적으로 풍부한 동식물상을 자랑하던 곳이었습니다.
삵과 고슴도치, 수달 등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도 살고, 백리향, 만병초, 금강애기나리, 한계령풀, 돌마타리 같은 희귀식물들도 뿌리 내려 살아가는 곳이었습니다.
더구나 자병산은 석회암지대라서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생태학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던 산이 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는 공사장일 뿐입니다.
인간으로서 부끄럽고 아린 가슴을 뒤로하고 황급히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여지껏 좋았던 기분이 한꺼번에 사라지는군요...
그런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애벌레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말았습니다.
백복령,
배꼽의 고어인 "뱃복"에서 유래한 이름이며 카르스트지형에서 나타나는 돌리네의 움푹 파인 웅덩이가 신체의 배꼽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백복령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꽤 큰 고갯길이었답니다.
삼척에서 한양으로 오가는 사람과 물자는 강릉의 대관령을 넘지 않는 한 대부분 이 백복령을 지나야 했습니다.
특히 이 길은 소금고개로서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첩첩산중에 자리 잡은 정선 땅은 소금 배가 올라올 수 없어 주민들은 주로 강릉이나 삼척에서 나는 동해의 소금을 의지 하여 살았습니다.
길 가 주막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산행을 마감합니다.
흉측한 자병산으로 기분이 상했지만,
그 전의 조용하고 아름답던 길만을 생각하며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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